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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2016-12-14] 낡고 쓸쓸한 골목에 움튼 ‘연대의 희망’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 :
2016-12-27
조회수 :
3958

옛 풍경 간직한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괭이부리마을 굴막공동작업장.
인천시 동구 만석동 3·4·6통 지역. 북성포구에서 나와 동일방직 인천공장을 에돌아 걸어서 30분 거리엔 1960~70년대 낡은 골목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괭이부리마을.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배경이 된 곳이다. 소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 모습을 그렸듯, 마을에선 지금도 600여명 주민들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고단한 삶을 버텨내고 있다.

1시간 남짓이면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40~50년 전 풍경이 낡아가는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골목을 천천히 걷다보면 높은 곳만을 향해 솟구쳐왔던 목소리도 몸도 마음도 평탄한 땅으로 낮게 낮게 내려앉는 걸 느끼게 될 터다. 골목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대답을 돌려준다.



괭이부리마을 골목길.
“괭이부리마을은 근현대 서민의 애환이 모두 담긴 곳입니다. 일제의 매립공사로 조선인 주민들이 쫓겨난 곳인데. 공장이 들어서면서 노동자들 숙소가 됐고, 한국전쟁 뒤엔 황해도 피란민들이 거처를 마련해 정착한 곳이죠. 60~70년대 산업화 시기엔 다시 공장 노동자들의 숙소가 됐고요.”(개항기역사문화연구소 대표 이종복씨)

괭이부리란 지명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앞바다에 있던 고양이섬(묘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1906년 이 일대를 매립하기 시작한 일제는 지속적으로 매립을 진행하며 공장들과 신주거지 조성을 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고양이섬은 사라졌다.

흙벽, 슬레이트 지붕, 연탄 등
1970년대 골목 모습 고스란히
빈집엔 예술가 들어와 마을단장
주민들은 굴·김치 공동생산·판매

골목 탐방은 만석비치타운 정문 건너편 골목에서 시작해도 되고, 만석부두 입구 사거리 부근에서 시작해도 된다. 공장과 아파트 무리 사이에 길게 엎드린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서민촌이다. 어느 골목을 들어가도 쌓인 연탄더미나 가스통 행렬, 얽히고설킨 전깃줄이 맞이한다.

서쪽 낮은 지역의 집들은 그래도 빈집이 적다. 골목도 다소 정비된 모습이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 공장의 높직한 가림막이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동쪽으로 오르면, 오른쪽 언덕으로 빼곡히 들어찬 1960~70년대 낡은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괭이부리마을 주택의 97%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집들이라고 한다.



괭이부리마을 만석소공원 주변의 한 골목.
만석소공원 옆으로 난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다 2층 구조인데, 시멘트와 흙을 바르고 슬레이트나 양철로 지붕을 해 얹은 모습이다. 황량한 폐가를 연상시키는 곳이 많지만, 어두컴컴한 골목 벽에 어른 키높이로 쌓인 연탄과 새어나오는 연탄가스 냄새가 사람 사는 곳임을 짐작게 한다. 나라미(정부미) 포대를 두른, 김장김치가 담긴 듯한 통들로부터는 온기가 전해져 오는 듯하다. 나무기둥에 시멘트·흙벽으로 올린 2층은 대개 창틀이 떨어져나가고 슬레이트 지붕도 부서진 채 방치돼 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 끝에 서면 낡고 너덜너덜해진 지붕 너머 높이 솟은 고층아파트 무리가 대조를 이룬다.



괭이부리마을 열린 미술관인 우리미술관. 주민들을 작품에 등장시킨 ‘사람꽃’ 전시회를 열고 있다.



‘사람꽃’ 전시가 열리고 있는 우리미술관.
얼핏 삭막해 보이기만 한 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건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다. 인천문화재단은 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하고 전시회를 여는 ‘우리미술관’을 운영 중이다.

인천문화재단 공간사업팀 구영은씨는 “빈집을 단장해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머물며 작업을 하도록 돕고 있다”며 “우리미술관 간판 글자도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구워 만든 도자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골목 한쪽에 들어선 우리미술관에선 김창겸·홍지윤 작가가 주민들을 참여시켜 꾸미고 그린 ‘사람꽃’ 전시회를 23일까지 연다. 마을 주민이 작가가 되고 작품이 되고, 또 관객이 되는 전시회다.

언덕길 위 만석교회 자리는 일제강점기 고급 식당과 온천, 가부키 공연장, 객실을 갖춘 대규모 위락시설 ‘팔경원’이 있던 곳이다. 매립지 공장 유치가 여의치 않자 일본인 사업가 9명이 출자해 1928년 팔경원을 짓고 주변을 홍등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길을 안내한 이종복씨는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자리가 홍등가가 있던 곳이다. 일본 여성과 한국 여성이 있었는데 화대는 일본 여성이 더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팔경원과 홍등가는 광복 뒤 성난 주민들이 불태워 헐었다고 전해진다.



빈 집을 단장해 예술가들을 입주시킨 건물.
카페와 교육관 등이 들어선 ‘희망키움터’ 1층 콩이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들고 ‘괭이부리마을 굴막 공동작업장’으로 향했다. 예전엔 만석부두를 통해 들어오는 굴을 받아 세척해 시장에 넘기는 일로 생계를 꾸리는 주민이 많았다고 한다. 작업장에서 굴을 씻어 분류하던 한 아주머니는 “옛날엔 각자 작업해 넘겼는데 이제 공동작업장에서 굴 작업을 해 공동으로 시장에 판다”고 했다. 주민들은 굴뿐 아니라 김치도 공동작업으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괭이부리마을이 늘 조용한 것은 아니다. 옛 골목길 풍경을 찍으려는 사진가들이 수시로 찾아와 기웃거린다. 때때로 현장학습에 나선 중·고생들이 공책을 펴들고 몰려든다. 건축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의 탐방, 카메라를 메고 구석구석 둘러보는 연인도 늘었다고 한다. 이렇게 낡아가면서 누구에겐 추억의 대상이 되고, 또 기록의 대상이 되며, 한편으론 개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곳이 지금의 괭이부리마을이다.

인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74685.html#csidx600d81d76b590bab7ad3f3e8d414088